12일 홍인화 5·18기록관장(왼)과 이윤희 5·18동지회장이 기증물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일기<본보 12월8일 5면>가 43년 만에 발견돼 12일 5·18 기록관에 기증됐다.
기증의 주인공은 이윤희 미주지역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장. 그는 오월항쟁 당시 대입을 위해 고향 나주서 공부하던 중, 우연히 청년 시위대가 몰던 버스에 타면서 시민군으로 활약하게 됐다. 이씨가 쓴 일기에는 항쟁에 나선 21일 첫날의 상황이 적혔다.
‘전남대학 정문 앞에 도착, 군인들과 투석이 벌어졌다’, ‘저녁 8시 나주에서 온 증원군 버스에 친구 승현이가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버스 속에서 사람 살려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등 생생한 현장이 담겼다.
기록관 관계자에게 떨리는 손으로 기증물을 건네던 이씨는 ‘오월 당시가 생각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군용차에 뛰어오르던 모습이 떠오른다. 군인들과 투석을 하고, 27일 계엄군 진입 직전 도청을 빠져나간 것도 생생하다”며 “이를 증명할 거리들을 두 손으로 들고 있으니 ‘혹여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했다. 항쟁을 겪었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윤희 미주지역 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장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작성했던 일기.
이씨에 따르면, 그는 항쟁 기간 매일 일기를 써 내려갔다. 기증한 ‘21일 일기’는 22일 새벽 계엄군을 피해 지인의 집 옥상에 올라가 작성했다. 나머지 일기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분실 등으로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게 됐다.
이씨는 “항쟁이 끝난 후 2006년 캐나다에 이민했다. ‘오월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 사이 어머니가 방을 정리하면서 여러 증거물이 사라진 것 같다. 최근 고서를 뒤지다 우연히 이 한점을 발견하곤 뛸 듯이 기뻤다”고 밝혔다.
이씨는 일기뿐만 아니라, 과거 한 신문에 실린 5·18 당시 사진도 기증했다. 이 기록물에는 군인들과 시위대가 항쟁 현장에서 대치하는 장면이 찍혀 있다.
5·18 기록관은 이씨가 건넨 기증물을 검토한 뒤 전시관에 비치할 예정이다. 기증 확인이 완료되면 이씨가 기록관에 전달한 기증물은 4점으로 늘어난다.
이씨는 지난 2018년부터 △400여 장의 ‘5·18관련 나주지역 공문서’ △미국 광주항쟁 지지 유학생들이 입은 ‘광주 티셔츠’를 기증한 바 있다.
홍인화 5·18기록관장은 “실질적 경험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5·18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몹시 귀감이 되는 일”이라며 “기증품의 가치 등은 차후 문제다. 역사적 사료로서 이미 큰 역할을 한다. 용기 내 찾아준 이씨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5·18 기록관은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위해 1980년 5월 항쟁 당시의 역사적 기록을 보관하는 곳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시작이었던 광주 동구 금남로 거리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