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대 상관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공군 이모 중사 사건이 발생 219일 만에 종료됐다. 지난 6월1일 사건을 이관받은 국방부 합동수사본부는 공군내 단일 성범죄로는 최대 규모라며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그런데 7일 발표된 최종 수사결과는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초동 수사를 맡았던 공군 해당 부대의 군사경찰과 군검사는 물론 군검찰의 지휘·감독 책임자였던 전 모 공군 법무실장 등는 한 명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공군의 초동 수사 및 보고 체계, 수사 지휘 등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형사적으로는 면죄부를 준 것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2·3차 피해 호소했던 공군 女 중사
고(故) 이 중사는 지난 3월 2일 상사의 강요로 방역지침을 위반한 회식에 불려나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 이튿날 곧바로 피해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유·협박 등에 시달리다 5월 22일 관사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은 6월1일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관되기 전까지 전 과정이 총체적으로 부실하게 처리됐다. 피·가해자 분리가 및 초동 수사가 제 때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가 다른 부대로 전속한 뒤에는 '성추행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불필요한 전입인사 요구와 수군거림 등 2·3차 피해를 입었다고 유족측은 호소했다.
피해자가 상당한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는 "너 신고할거지? 신고해 봐"라는 식의 문자를 보내 회유·협박했다. 수사는 진척이 없었고,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던 공군 법무실 소속 모 중위(단기 법무관)은 약 두 달간 어떤 법률적 지원도 제공하지 않았다.
軍 최종 수사결과…3명 구속 기소·12명 불구속 기소
국방부는 지난 4개월간의 수사 결과, 총 15명을 기소했다. 또 이들을 포함한 총 38명에 대해 문책을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성추행 가해자인 장 중사와 동일 부대에서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협박한 A상사와 B준위 등 3명은 이미 지난 7월 중간수사 발표 전에 구속기소됐다.
허위보고한 혐의로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과 중앙수사대장 등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국방부는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성범죄가 발생한 20비행단 정통대대장을 기소한 데 이어, 고인의 신상을 유포한 15비행단 대대장과 중대장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고 지난 7월 밝힌 바 있다.
이날 국방부가 추가 발표한 내용은 고인이 새로 배치된 15비행단의 C원사 및 국선변호인이었떤 D중위에 대한 기소 내용이다. C원사는 규정상 자신에게 이 중사가 휴가출발 신고를 해야할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휴가 출발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등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혐의로 추가 불구속 기소됐다. E중위도 부실변론으로 직무를 유기한 혐의로 역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공군본부의 양성평등센터 E센터장은 국방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채 관련 업무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관리하지 못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육·해군과 달랐던 공군 군사경찰…"초동수사 미흡하지만 법적책임 없다"
반면 피해자에게 2·3차 가해를 한 의혹을 받았던 15비행단 F 대대장과 G 중대장 등은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새 부대로 배치되며서 굳이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도 "전속 올 때 PCR 검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중사가 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냐"고 다그쳤거나, 새로운 전입자에게 가혹한 대우를 한다는 의미의 일명 '튕기기'를 했다는 혐의는 모두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H대위는 새로 전입한 피해자에게 날짜·시간대별로 무엇을 먹었고 어디를 방문했는지 등을 모두 제출하게 해 피해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역시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지었다.
이 밖에도 20비행단에서 성범죄 발생 당시 차량을 운전하며 범행을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은 I하사, 이 부대에서 초기 수사를 맡았던 군사경찰대대장 J 중령과 K 준위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의 수사지도과장 L 중령, 수사상황실장 M 소령 등이 군사경찰단장 등과 공모해 허위보고했다는 혐의도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공군 법부실을 지휘·관리하는 법무실장 전 모 준장, 고등검찰부장 N 중령 등도 제대로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정황 등을 근거로 직무유기 혐의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특히 전 법무실장에 대해선 민간인들이 참여한 국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도 치열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검찰단 관계자는 "원래 육군과 해군에선 예하 부대 군사경찰이 사건을 처리할 땐 상부에 적시에 보고가 이뤄지는데 반해 공군은 일정 사건을 모아서 보고하다 보니 제 때 윗선에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군 법무실 지휘부가 사건 수사 내용을 제 때 보고받지 못해 적절한 수사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면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검찰단 관계자는 "분명히 공군의 초기 수사는 미흡했다"면서도 "이것을 형사법적으로 직원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으로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냈고, 공소유지도 어렵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기소된 15명 중 공군의 부실한 초동수사와 관련해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전망이다.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장도 부실수사 혐의가 아닌 허위보고 관련한 혐의를 적용했다.
용두사미 수사…유족은 '반발'
국방부가 총 18회의 압수·수색 등을 실시하며 총 79명을 조사한 이번 공군 성폭력 이 부사관 사망사건은 군 최초의 특임군검사(고민숙 해군대령)을 임명하고 군검찰 수사심의위 제도를 도입하는 등 4개월여간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결국 3명을 구속 기소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한 것이 결론이다.
국방부는 이들을 포함해 총 38명에 대해선 각 군에 문책(징계 및 경고)를 요구했다고 밝혔는데, 각 군의 내부 징계위에서 대부분 경징계를 내릴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유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국방부의 최종 수사 결과를 들은 이 중사의 부친은 “초동수사를 맡았던 사람 중 기소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니 대통령과 서욱 국방부 장관의 말을 믿고 기다렸는데 피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협조해 특검을 통해 제대로 수사를 해달라”고 촉구했다.